백조의 사랑이야기 10
백조의 사랑이야기 2009. 7. 18. 22:20자취생: 바깥 날씨가 차가왔지만 그녀에게 줄 선물을 쥔 손은 포켓에 넣지 않았다. 오늘 그녀 손을 처음 느껴보았다. 단지 두손가락만이 내 손바닥에 다았지만 그 느낌은 혜지씨에 대한 내마음과도 같이 따뜻했다. 맘에 안들지나 않았을까?
만화방총각: 이제는 내 맘이 완전히 정경이 쪽으로 가고 있다. 정경이에 대한 내맘은 불안하지 않지만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을거 같은 느낌이 온다. 내맘에 그녀를 이제 내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또 조금씩 불안해져 온다. 만화방에 가보니 혜지씨가 무척이나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아까와 다르다. 림스틱을 바른 입술이다. 그녀의 분위기와 너무 잘어울리는 색깔이다. 오늘밤은 집에 들어가서 자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모처럼 하루 쉬자.
자취생: 짐을 다 챙겼다. 한쪽어깨에 조금 크다싶은 가방을 메고 자취방을 나섰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 때문에 걷기가 부담스럽다. 만화방을 지나쳤다. 만화방문이 닫혀 있다. 오늘은 만화방이 쉬는가벼. 저기 길 멀리서 낯설지 않은 두사람이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만화방총각: 아침에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의 말이 내 마음속 석연치 않았던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너도 장가를 보내야 할텐데. 조건 좋은 여자가 있는데 선한번 볼래?" "아직은 싫어요. 연애해서 갈거란 말이에요." 농담처럼 대답했지만 뭔가 어려운 일이 닥칠것만 같다.
백수아가씨: 오늘은 만화방에도 안나가고, 립스틱은 한번 발라보고 싶은데, 집에서 립스틱 바르고 있으면 울엄마가 또 뭐라 그러시겠지. 오늘 우리엄마가 왜 그러실까? 내 옷한벌 사줄테니 백화점 가자고 그랬다. 이쁘게 차려입고 또 이쁘게 화장했다. 그리고 녀석이 준 립스틱을 발랐다. 야! 괜찮은데...! 꽤 비싼옷인데 엄마가 두말않고 사주셨다. 혹시 시집보낼려고 그러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옷 싫어? 다시 돈으로 바꿀까? " 아무생각없이 그냥 입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근한 누구를 만났다. 그런데 큰일이다. 옆에 우리엄마가 있다. 녀석이 아는체라도 하면 우리엄마 성격에 녀석이 누군지 삼일은 물어대실게 틀림없다. 한쪽 어깨에 큰 가방이 들려있다. 진짜 어디를 가나보다. 녀석이 선물한 립스틱 바른모습을 하루도 못가 들키고 만게 조금 쑥스럽다. 기어이 녀석이 아는체를 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옆에 엄마 때문에 조금 머뭇거렸다. "어. 그때 눈길에 넘어졌던 학생이네. 반가워." "예. 요즘은 약수물 받으러 안가세요?" 뭐야? 왜 우리 엄마하고 녀석이 친한척하지? "호호. 무거워서... 근데 어디가나보지?" "예. 방학이라 집에 가는길이에요." "아. 진주가는구나. 참 내 딸이야." "예. 에... 안녕하세요." 녀석이 모르는사람처럼 나에게 인사를 했다. 조금 기분이 그렇다. 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인사를 했다. 녀석 집이 진주에 있었구나. 진주면 내가 어릴때 살았던 곳이다. 동향녀석이네.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녀석이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지나쳐 멀어져간다. "엄마 누구야?" "응. 쌀가마니하고 약수통 들어준 학생인데 참 착한거 같애." 하하. 녀석이 엄마가 말하던 바로 그 착한학생이었어? 엄마는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음직하다. "몇살인데?" "92학번이면 몇살이냐?" "엄만 내나이도 모르세요?" "아. 너도 92학번이지." "이름이 뭔데?" "너 관심있니?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물어봤네." 과연 우리 엄마 다우시다. 바로 고개를 돌려 제법 멀리 걸어간 녀석을 다시 불렀다. 녀석이 뭔일인도 모른채 종종걸음으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물어볼게 있어서. 미안해. 괜찮지?" "예." "이름이 뭐야?" "예?"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한번 쳐다보았다. 뭐해 빨리 말하지 않고. "예. 이현재라고 합니다."
자취생: 오늘은 모르는 사람처럼 그녀 곁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녀 눈에 맺힌 내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왔지만. 애써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야 했지요. 제가 선물한 것이 아닌것 같은 그녀의 이쁜 입술색을 보았습니다. 아마 제 선물이 싫었나 봅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제 이름을 물어봅디다. 그녀가 제 이름을 물어보길 바랬지만, 이제 그녀도 제 이름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와 난 타인사이였읍니다. 마냥 모른척 지나쳐가다가 잠시 뒤돌아 봤지요. 미끄러워 부담스럽던 그 눈길을 그녀는 참 빨리도 걸어가 버렸나봅니다. 길은 그저 길만의 모습이었기에...
만화방총각: 집을 나와 정경이의 음반점을 찾아갔다. 문이 닫혀있다. 어디 갔나? 전화를 해보았다. 가게도 집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디 갔나보지 뭐. 만화방에 돌아왔다. 이 만화방의 생활이 별로 길지가 않을 것 같다.
백수아가씨: 아이구 엄마 좀 조심하지 그랬어. 엄마를 한쪽골목으로 부축했다. 아까부터 눈길이 미끄럽더니만 결국 엄마가 넘어지셨다. 별로 심하게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많이도 아픈척 하신다. 저녁이 되어서 그게 엄마의 작전이었단걸 알 수 있었다. 우쒸 다리 긁힌거하고 저녁상 차리는거하고는 무슨 상관이람. 오늘 저녁상은 엄마가 조리만 해준 국이랑 밥이랑 모조리 내가 차려야 했다. 그래도 오늘 엄마가 겨울옷 한벌 기분좋게 사주셨다. 다음에 제가 돈벌면 저도 옷한벌 사드릴께요. 녀석이 내 어릴적 추억이 있던 곳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첨부터 친근한 무엇이 있었나보다. 나이도 나보다 한두살 많은줄 알았는데 동갑이었다. 이름도 알았다. 이름마저 낯설지 않았다. 밤에 자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현재, 이현재...? 내 마음속 오랜시간 지워지지않고 숨쉬고 있는 이름이 떠올랐다. 유치원 앨범을 꺼냈다. 동그라미 쳐진 사진밑에 선명하게 이현재라고 쓰여있다. 어찌보면 닮은 것도 같다. 특히나 진주사람. 나하고 나이도 같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영화같은 우연이 어디있어. 하지만 이상하게 녀석이 이 사진의 주인공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커져만 갔다.
자취생: 집에 와 하룻밤 묵었다. 방이 장난이 아니게 따뜻했다. 기분좋다. 더운물도 막 나온다. 그리고 내 방에는 없던 가족의 웃음이 있었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이다. 내일은 친구들도 만나야겠다. 부모님은 대학원을 가라고 하신다. 하지만 이제 나도 사회로 나가고 싶다.
만화방총각: 밤이 되어서야 정경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많이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싸늘하지는 않았다. 내일은 자기가 찾아온다며 만화방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간다고 말했지만, 내일도 가게를 열기 싫다면서 자기도 한번 내가 숨쉬는 곳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라 그럼.
백수아가씨: 오전 내내 녀석이 혹시 내 첫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붕떠 있었다. 첫사랑은 그냥 마음속에 묻어야 그때의 느낌을 잃지 않는다고 하던데... 소중한 내 추억이 깨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훗 천진난만하게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만화방에 왠 여자가 이병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병씨가 날 아는체 하자. 그제서야 그녀가 나한테 눈인사를 보냈다. 성깔있어 보인다. 이병씨가 그녀가 바로 정경씨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이병씨 마음에 어떤 모습의 느낌표일까? 내가 오자 그 둘은 이병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심히 그녀의 입술을 보았다. 딴짓이라도 하면 금방알아챌 수 있도록 그녀 입술의 루즈선을 똑똑히 기억했다. 뜨개질이나 하자.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그녀석 목이 자꾸 생각이 난다. 목도리폭이 내가 하기엔 너무 커져 있었다. 내가 왜 이럴까? 정경씨가 나가며 또 차분한 눈인사를 보냈다. 나도 차분하게 미소를 지어보여주었다. 들어갈때와 똑같은 입술로 그녀는 미소짓고 만화방을 나갔다. 그녀를 마중나간 이병씨의 들어올때의 모습은 기분이 좋은가보다.
자취생: 일어나니 아버진 출근을 하셨다. 엄마가 고생했다며 곰탕을 끓여 놓으셨다. 구수한게 속이 시원하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친구들은 내일 만나야겠다. 밤에 그녀 생각을 해보았다. 다시 서울가면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까? 며칠 비운 서울처럼 한동안 낯설은 모습으로 들어올까?
만화방총각: 점심이 좀 지나서 전화도없이 그녀가 찾아왔다. 만화방찾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꽤 큰 만화방이네." "응.." "좋아 보인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혜지씨가 들어왔다. 약간 놀라는 눈치다. 그럴수도 있겠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르는 여자가 앉아 있으니. 소개를 해주었다. 정경인 내입을 통해서 혜지씰 알고 있었고, 혜지씬 내 공책을 통해서 그 이름을 보았을것이다. 그런 둘이었지만 가벼운 눈인사만 오고갔다. 혜지씨에게 이 자리를 넘기고 정경이와 난 방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가 자는 방이야? 남자치고는 깨끗하다." "하하 그래?" "별로 재밌는게 없네." "밖에 만화책 많이 있잖아. 하하" 한참 그러다. 어제는 왜 가게문을 안열었냐고 물어보았다. "응. 내 남편 결혼식장에 갔었어." 무덤덤히 말하는 그녀의 대답이 썩 달갑지 않게 들렸다. "신부가 참 예쁘더라. 훗... 이젠 그남자 완전히 정리했어." 이번 대답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항상 전남편을 얘기할때 남편이란 호칭을 빼지 않던 그녀가 오늘 처음 그 남자라고 말했다. "왜? 너도 시집가고 싶어?" "아니. 그냥 이대로 살래." "시집가라. 그래야 그사람한테 너도 청첩장 보낼수 있잖아." "풋. 왜 좋은 사람이라도 있어.?" "...어... 나는 어떨까?" "너? 호호 농담이라도 고맙다." "씨. 농담 아닌데..." 한동안 대화가 끊어졌다. 잠시 다른 말 몇마디 하고 그녀가 작별인사를 했다. 정경이가 가벼운 눈인사를 혜지씨에게 남기고 만화방문을 나섰다. 멀리 배웅하려고 했는데, 들어가라고 한다. 요전의 집에 가라고 했던것처럼 차가운 어투였지만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럼 잘가.." "그래 내일봐. 후후 아까 그 농담 기분은 참 좋았었어. 안녕" 그녀의 인사는 내맘에 차갑게 느껴졌으나 또한 용기를 심어주었다.
만화방아가씨:어젯밤에 유치원 앨범을 유심히 살폈다. 뭔가 단서를 잡기 위해서... 그러나 그러기에는 앨범이 너무 낡아 있었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녀석이 서울에 있으면 물어라도 볼텐데... 오늘 오전은 가을날 바람에 소근거리는 단풍처럼 내맘이 떨고 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옆에는 유치원 앨범의 주소란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This call number is...." 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걸까? 20년 가까이 지난 번호를 지금 눌러서 뭘 어쩌겠다고... 이사를 가도 벌써 갔겠지. 그래도 녀석은 그곳에 살고 있을것 같은 느낌이 항상 들었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유치원 앨범을 천천히 넘겨 보았다. 칠대삼 가르마에 한꼬마가 그또한 뭔가 수줍은듯 입만 웃고 있었다. 천천히 한장한장 앨범을 넘겨 보았다. 모두들 기억에 잡히지 않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한장 한장 넘기다보니 다시 주소란까지 넘겨져 버렸다. 2-**** 가만 요즘 단자리 국번 쓰는 곳이 있나? 뭔가 또 설레임이 왔다. 전화기를 들었다. 0591-114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교환원 ***입니다." "저기요. 2국이 몇번으로 바뀌었나요?" "예? 지금 장난하세요?" "아니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요..." "참내... 2국은 12년전에 41국으로 바뀌었고요. 41국은 2년전에 741국으로 바뀌었어요. 앞으로 이런전화 하지마세요." 딸깍.. 대게 불친절하네. 다시 크게 호흡을 하고 번호를 눌렀다. 아. 통화가 간다.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이 통화음이 참 크고도 길게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딸깍. "여보세요?" 억양이 강한 경상도 아줌마의 목소리다. "여보세요. 혹시 거기가 현재네 집이 맞나요?" "우리 아들인디... 누구세요?" "예? 맞아요? 전 친군데요." "친구? 이놈이 아침부터 당구친다고 나가버렸는데.." "...저.. 그럼요 혹시 현재가 언제쯤 서울 올라간다 하던가요?" "아. 서울친구구만. 아마 모래쯤 올라갈랑가? 아직 잘모르겠는데." "저기요 혹시 현재가 **대학 기계공학과 다니는 거 맞죠?" "맞는데. 학교친구가 아닌가봐?" "..예.. 아니에요.." "바쁜일이면 헨드폰번호 가르쳐줄까. 이놈이 지애비 핸드폰을 몰래 들고 나갔네." "예?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다시하던가." "예. 나중에 다시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하하. 내 첫사랑은 추억이 되어 추억만으로 남을것 같은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바로 나의 옆에 우연처럼 아무것도 모른채 다가와 숨쉬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무수한 기억들이 지나쳐졌지만 그걸 모르시는듯 그의 어머닌 태연하게 내 가슴떨림을 일상의 한부분처럼 받으셨다.
만화방총각: 이제는 내 맘이 완전히 정경이 쪽으로 가고 있다. 정경이에 대한 내맘은 불안하지 않지만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을거 같은 느낌이 온다. 내맘에 그녀를 이제 내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또 조금씩 불안해져 온다. 만화방에 가보니 혜지씨가 무척이나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아까와 다르다. 림스틱을 바른 입술이다. 그녀의 분위기와 너무 잘어울리는 색깔이다. 오늘밤은 집에 들어가서 자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모처럼 하루 쉬자.
자취생: 짐을 다 챙겼다. 한쪽어깨에 조금 크다싶은 가방을 메고 자취방을 나섰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 때문에 걷기가 부담스럽다. 만화방을 지나쳤다. 만화방문이 닫혀 있다. 오늘은 만화방이 쉬는가벼. 저기 길 멀리서 낯설지 않은 두사람이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만화방총각: 아침에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의 말이 내 마음속 석연치 않았던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너도 장가를 보내야 할텐데. 조건 좋은 여자가 있는데 선한번 볼래?" "아직은 싫어요. 연애해서 갈거란 말이에요." 농담처럼 대답했지만 뭔가 어려운 일이 닥칠것만 같다.
백수아가씨: 오늘은 만화방에도 안나가고, 립스틱은 한번 발라보고 싶은데, 집에서 립스틱 바르고 있으면 울엄마가 또 뭐라 그러시겠지. 오늘 우리엄마가 왜 그러실까? 내 옷한벌 사줄테니 백화점 가자고 그랬다. 이쁘게 차려입고 또 이쁘게 화장했다. 그리고 녀석이 준 립스틱을 발랐다. 야! 괜찮은데...! 꽤 비싼옷인데 엄마가 두말않고 사주셨다. 혹시 시집보낼려고 그러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옷 싫어? 다시 돈으로 바꿀까? " 아무생각없이 그냥 입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근한 누구를 만났다. 그런데 큰일이다. 옆에 우리엄마가 있다. 녀석이 아는체라도 하면 우리엄마 성격에 녀석이 누군지 삼일은 물어대실게 틀림없다. 한쪽 어깨에 큰 가방이 들려있다. 진짜 어디를 가나보다. 녀석이 선물한 립스틱 바른모습을 하루도 못가 들키고 만게 조금 쑥스럽다. 기어이 녀석이 아는체를 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옆에 엄마 때문에 조금 머뭇거렸다. "어. 그때 눈길에 넘어졌던 학생이네. 반가워." "예. 요즘은 약수물 받으러 안가세요?" 뭐야? 왜 우리 엄마하고 녀석이 친한척하지? "호호. 무거워서... 근데 어디가나보지?" "예. 방학이라 집에 가는길이에요." "아. 진주가는구나. 참 내 딸이야." "예. 에... 안녕하세요." 녀석이 모르는사람처럼 나에게 인사를 했다. 조금 기분이 그렇다. 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인사를 했다. 녀석 집이 진주에 있었구나. 진주면 내가 어릴때 살았던 곳이다. 동향녀석이네.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녀석이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지나쳐 멀어져간다. "엄마 누구야?" "응. 쌀가마니하고 약수통 들어준 학생인데 참 착한거 같애." 하하. 녀석이 엄마가 말하던 바로 그 착한학생이었어? 엄마는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음직하다. "몇살인데?" "92학번이면 몇살이냐?" "엄만 내나이도 모르세요?" "아. 너도 92학번이지." "이름이 뭔데?" "너 관심있니?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물어봤네." 과연 우리 엄마 다우시다. 바로 고개를 돌려 제법 멀리 걸어간 녀석을 다시 불렀다. 녀석이 뭔일인도 모른채 종종걸음으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물어볼게 있어서. 미안해. 괜찮지?" "예." "이름이 뭐야?" "예?"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한번 쳐다보았다. 뭐해 빨리 말하지 않고. "예. 이현재라고 합니다."
자취생: 오늘은 모르는 사람처럼 그녀 곁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녀 눈에 맺힌 내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왔지만. 애써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야 했지요. 제가 선물한 것이 아닌것 같은 그녀의 이쁜 입술색을 보았습니다. 아마 제 선물이 싫었나 봅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제 이름을 물어봅디다. 그녀가 제 이름을 물어보길 바랬지만, 이제 그녀도 제 이름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와 난 타인사이였읍니다. 마냥 모른척 지나쳐가다가 잠시 뒤돌아 봤지요. 미끄러워 부담스럽던 그 눈길을 그녀는 참 빨리도 걸어가 버렸나봅니다. 길은 그저 길만의 모습이었기에...
만화방총각: 집을 나와 정경이의 음반점을 찾아갔다. 문이 닫혀있다. 어디 갔나? 전화를 해보았다. 가게도 집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디 갔나보지 뭐. 만화방에 돌아왔다. 이 만화방의 생활이 별로 길지가 않을 것 같다.
백수아가씨: 아이구 엄마 좀 조심하지 그랬어. 엄마를 한쪽골목으로 부축했다. 아까부터 눈길이 미끄럽더니만 결국 엄마가 넘어지셨다. 별로 심하게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많이도 아픈척 하신다. 저녁이 되어서 그게 엄마의 작전이었단걸 알 수 있었다. 우쒸 다리 긁힌거하고 저녁상 차리는거하고는 무슨 상관이람. 오늘 저녁상은 엄마가 조리만 해준 국이랑 밥이랑 모조리 내가 차려야 했다. 그래도 오늘 엄마가 겨울옷 한벌 기분좋게 사주셨다. 다음에 제가 돈벌면 저도 옷한벌 사드릴께요. 녀석이 내 어릴적 추억이 있던 곳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첨부터 친근한 무엇이 있었나보다. 나이도 나보다 한두살 많은줄 알았는데 동갑이었다. 이름도 알았다. 이름마저 낯설지 않았다. 밤에 자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현재, 이현재...? 내 마음속 오랜시간 지워지지않고 숨쉬고 있는 이름이 떠올랐다. 유치원 앨범을 꺼냈다. 동그라미 쳐진 사진밑에 선명하게 이현재라고 쓰여있다. 어찌보면 닮은 것도 같다. 특히나 진주사람. 나하고 나이도 같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영화같은 우연이 어디있어. 하지만 이상하게 녀석이 이 사진의 주인공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커져만 갔다.
자취생: 집에 와 하룻밤 묵었다. 방이 장난이 아니게 따뜻했다. 기분좋다. 더운물도 막 나온다. 그리고 내 방에는 없던 가족의 웃음이 있었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이다. 내일은 친구들도 만나야겠다. 부모님은 대학원을 가라고 하신다. 하지만 이제 나도 사회로 나가고 싶다.
만화방총각: 밤이 되어서야 정경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많이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싸늘하지는 않았다. 내일은 자기가 찾아온다며 만화방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간다고 말했지만, 내일도 가게를 열기 싫다면서 자기도 한번 내가 숨쉬는 곳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라 그럼.
백수아가씨: 오전 내내 녀석이 혹시 내 첫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붕떠 있었다. 첫사랑은 그냥 마음속에 묻어야 그때의 느낌을 잃지 않는다고 하던데... 소중한 내 추억이 깨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훗 천진난만하게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만화방에 왠 여자가 이병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병씨가 날 아는체 하자. 그제서야 그녀가 나한테 눈인사를 보냈다. 성깔있어 보인다. 이병씨가 그녀가 바로 정경씨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이병씨 마음에 어떤 모습의 느낌표일까? 내가 오자 그 둘은 이병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심히 그녀의 입술을 보았다. 딴짓이라도 하면 금방알아챌 수 있도록 그녀 입술의 루즈선을 똑똑히 기억했다. 뜨개질이나 하자.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그녀석 목이 자꾸 생각이 난다. 목도리폭이 내가 하기엔 너무 커져 있었다. 내가 왜 이럴까? 정경씨가 나가며 또 차분한 눈인사를 보냈다. 나도 차분하게 미소를 지어보여주었다. 들어갈때와 똑같은 입술로 그녀는 미소짓고 만화방을 나갔다. 그녀를 마중나간 이병씨의 들어올때의 모습은 기분이 좋은가보다.
자취생: 일어나니 아버진 출근을 하셨다. 엄마가 고생했다며 곰탕을 끓여 놓으셨다. 구수한게 속이 시원하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친구들은 내일 만나야겠다. 밤에 그녀 생각을 해보았다. 다시 서울가면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까? 며칠 비운 서울처럼 한동안 낯설은 모습으로 들어올까?
만화방총각: 점심이 좀 지나서 전화도없이 그녀가 찾아왔다. 만화방찾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꽤 큰 만화방이네." "응.." "좋아 보인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혜지씨가 들어왔다. 약간 놀라는 눈치다. 그럴수도 있겠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르는 여자가 앉아 있으니. 소개를 해주었다. 정경인 내입을 통해서 혜지씰 알고 있었고, 혜지씬 내 공책을 통해서 그 이름을 보았을것이다. 그런 둘이었지만 가벼운 눈인사만 오고갔다. 혜지씨에게 이 자리를 넘기고 정경이와 난 방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가 자는 방이야? 남자치고는 깨끗하다." "하하 그래?" "별로 재밌는게 없네." "밖에 만화책 많이 있잖아. 하하" 한참 그러다. 어제는 왜 가게문을 안열었냐고 물어보았다. "응. 내 남편 결혼식장에 갔었어." 무덤덤히 말하는 그녀의 대답이 썩 달갑지 않게 들렸다. "신부가 참 예쁘더라. 훗... 이젠 그남자 완전히 정리했어." 이번 대답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항상 전남편을 얘기할때 남편이란 호칭을 빼지 않던 그녀가 오늘 처음 그 남자라고 말했다. "왜? 너도 시집가고 싶어?" "아니. 그냥 이대로 살래." "시집가라. 그래야 그사람한테 너도 청첩장 보낼수 있잖아." "풋. 왜 좋은 사람이라도 있어.?" "...어... 나는 어떨까?" "너? 호호 농담이라도 고맙다." "씨. 농담 아닌데..." 한동안 대화가 끊어졌다. 잠시 다른 말 몇마디 하고 그녀가 작별인사를 했다. 정경이가 가벼운 눈인사를 혜지씨에게 남기고 만화방문을 나섰다. 멀리 배웅하려고 했는데, 들어가라고 한다. 요전의 집에 가라고 했던것처럼 차가운 어투였지만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럼 잘가.." "그래 내일봐. 후후 아까 그 농담 기분은 참 좋았었어. 안녕" 그녀의 인사는 내맘에 차갑게 느껴졌으나 또한 용기를 심어주었다.
만화방아가씨:어젯밤에 유치원 앨범을 유심히 살폈다. 뭔가 단서를 잡기 위해서... 그러나 그러기에는 앨범이 너무 낡아 있었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녀석이 서울에 있으면 물어라도 볼텐데... 오늘 오전은 가을날 바람에 소근거리는 단풍처럼 내맘이 떨고 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옆에는 유치원 앨범의 주소란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This call number is...." 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걸까? 20년 가까이 지난 번호를 지금 눌러서 뭘 어쩌겠다고... 이사를 가도 벌써 갔겠지. 그래도 녀석은 그곳에 살고 있을것 같은 느낌이 항상 들었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유치원 앨범을 천천히 넘겨 보았다. 칠대삼 가르마에 한꼬마가 그또한 뭔가 수줍은듯 입만 웃고 있었다. 천천히 한장한장 앨범을 넘겨 보았다. 모두들 기억에 잡히지 않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한장 한장 넘기다보니 다시 주소란까지 넘겨져 버렸다. 2-**** 가만 요즘 단자리 국번 쓰는 곳이 있나? 뭔가 또 설레임이 왔다. 전화기를 들었다. 0591-114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교환원 ***입니다." "저기요. 2국이 몇번으로 바뀌었나요?" "예? 지금 장난하세요?" "아니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요..." "참내... 2국은 12년전에 41국으로 바뀌었고요. 41국은 2년전에 741국으로 바뀌었어요. 앞으로 이런전화 하지마세요." 딸깍.. 대게 불친절하네. 다시 크게 호흡을 하고 번호를 눌렀다. 아. 통화가 간다.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이 통화음이 참 크고도 길게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딸깍. "여보세요?" 억양이 강한 경상도 아줌마의 목소리다. "여보세요. 혹시 거기가 현재네 집이 맞나요?" "우리 아들인디... 누구세요?" "예? 맞아요? 전 친군데요." "친구? 이놈이 아침부터 당구친다고 나가버렸는데.." "...저.. 그럼요 혹시 현재가 언제쯤 서울 올라간다 하던가요?" "아. 서울친구구만. 아마 모래쯤 올라갈랑가? 아직 잘모르겠는데." "저기요 혹시 현재가 **대학 기계공학과 다니는 거 맞죠?" "맞는데. 학교친구가 아닌가봐?" "..예.. 아니에요.." "바쁜일이면 헨드폰번호 가르쳐줄까. 이놈이 지애비 핸드폰을 몰래 들고 나갔네." "예?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다시하던가." "예. 나중에 다시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하하. 내 첫사랑은 추억이 되어 추억만으로 남을것 같은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바로 나의 옆에 우연처럼 아무것도 모른채 다가와 숨쉬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무수한 기억들이 지나쳐졌지만 그걸 모르시는듯 그의 어머닌 태연하게 내 가슴떨림을 일상의 한부분처럼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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